[에니어그램 3번] 목표성취형: 피땀으로 쌓은 탑이 무너져 내리다

지윤아, 굳이 사내 게시판에 그런 글까지 올렸어야 했어?

에니어그램 3번 여자캐릭터

선배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커피잔을 세게 쥐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지인이라는 이유로 낙하산 타고 내려온 사람입니다. 심지어 우리 로펌의 공정한 채용 원칙을 무시했고요.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하는 일 아닌가요.”

내 목소리는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단호했지만, 책상 아래로 감춘 반대쪽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선배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가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니잖아. 솔직히 말해서 요새 네가 맡은 프로젝트보다 그 친구가 따낸 사건들이 더 주목받고 있으니까, 네가 예민해진 거 아니야?”

선배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정곡을 찔렀다. 지윤(3번)은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맞다. 만약 그 신입 변호사가 실력조차 형편없는 구제 불능이었다면 나는 콧방귀를 뀌며 철저히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뒷배경을 등에 업고 들어온 주제에, 타고난 언변과 여유로운 태도로 클라이언트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나는 밤을 새우며 판례를 뒤지고 코피를 쏟아가며 겨우 얻어낸 인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도 쉽게, 마치 산책을 하듯 내가 서 있어야 할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축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익명 게시판의 내 고발 글을 노려보았다. 정의감? 공정함? 아니, 나는 그저 그 완벽해 보이는 미소를 어떻게든 짓밟아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가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단 1초도 견딜 수 없었다.

내 자리를 빼앗기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남지?

선배가 회의실을 나가고 혼자 남겨지자, 나는 무너지듯 의자에 기대앉았다. 눈을 감으니 억울함과 함께 끔찍한 공포가 밀려왔다. 저 사람이 계속 승승장구해서 결국 내 존재감이 희미해지면 어쩌지. 이 로펌에서 가장 유능하고 독보적인 에이스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사라지면, 나는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어두운 회의실의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지며,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목을 조여왔다.

“지윤아, 2등 할 거면 뭣 하러 잠을 줄여가며 공부해. 엄마는 우리 딸이 늘 최고였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좀 실망스럽다.”

100점 만점에 98점을 받아오던 날이었다. 하나를 틀려 전교 2등으로 밀려났을 때, 엄마는 서늘한 얼굴로 내 시험지를 식탁 한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그때 알았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1등이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남들이 놀 때 책을 팠고, 남들이 잘 때 서면을 작성했다. 피가 나도록 노력해서 이 화려한 명함과 사람들의 찬사를 얻어냈다. 그런데 인맥이라는 반칙표를 쥐고 나타난 그가, 심지어 실력이라는 날개까지 달고 내 몫의 찬사를 가로채고 있다. 내가 바쳐온 그 고통스러운 밤들이 전부 조롱당하는 기분이다. 두렵다. 내 자리를 뺏기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잊혀질까 봐, 다시 그 식탁 구석으로 밀려난 쓸모없는 아이가 될까 봐 너무 두려워서 미칠 것만 같다.

지윤 씨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열정적인 사람이네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지금의 그 눈부신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외롭게 지새웠을까요. 지윤 씨가 그동안 쏟아부은 땀과 눈물, 그리고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자신을 채찍질해 온 그 묵직한 시간들을 저는 온전히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윤 씨, 스스로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 후배가 당신보다 조금 더 빛을 발한다고 해서, 지윤 씨가 그동안 쌓아 올린 찬란한 성취와 당신이라는 사람의 고유한 가치가 정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당신의 삶은 오직 타인의 인정이라는 연료로만 달릴 수 있는 기차가 아닙니다. 지금 당신을 그토록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그 후배의 존재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으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시절의 그 서늘한 공포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윤 씨를 위해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작은 연습 하나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름하여 ‘조연 되어보기 실험’입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완벽한 답을 내놓으려는 입을 다물어 보세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는 겁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10퍼센트 정도 빗겨나 있더라도, 그 누구도 당신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불안함이 밀려와 다시 누군가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밤이 오면,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해주세요.

“내가 1등이 아니어도, 남들보다 조금 덜 빛나도, 나는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귀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성취라는 갑옷을 입지 않아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제 그 무거운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히 잠들어도 돼요.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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