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거야? 네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게 아니잖아.

편집장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일러스트 시안들을 거칠게 끌어모아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냥 대중적이고 무난한 그림이 필요하신 거면 다른 작가 찾으세요. 저는 제 작품의 고유한 분위기를 훼손하면서까지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편집장은 황당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선의의 조언을 하려던 다른 팀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또 저러네, 진짜 별나다’라는 무언의 정적을 읽었다.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오는 길, 심장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리게 아파왔다.
하진(4번)은 결국 또 도망쳤다. 사실 편집장의 수정 요청은 아주 사소한 색감 조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것이 내 영혼을 향한 모욕으로 들렸다. 남들과 똑같은, 그저 그런 평범하고 기계적인 그림을 그리라는 강요 같았다. 길거리를 걷는데 나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전부 회색빛으로 보였다. 이 넓은 세상에 나와 같은 주파수로 세상을 느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짙은 우울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저 속물적이고 피상적인 사람들은 내 깊은 내면의 슬픔과 예술성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왜 항상 이방인처럼 느껴질까? 내 안의 무엇이 고장 난 걸까?
작업실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쏘아붙이고 왔지만,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나를 짓누르는 건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둥글둥글하게 섞여들지 못할까. 왜 나는 늘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리는 걸까.
어둠 속에서 코끝이 찡해지며, 굳게 닫아두었던 어릴 적 기억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너는 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유난스럽니? 언니 좀 봐라. 둥글둥글 얼마나 예뻐. 별것도 아닌 일에 청승맞게 울고 짜고. 제발 남들처럼 평범하게 좀 굴어!”
열 살의 나는, 길가에 죽어 있는 작은 새를 보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안아주는 대신,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럽다는 듯 내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며 다그쳤다.
그날 이후로 나는 확신했다. 내 깊은 감정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불길한 것이라고. 나는 평범한 가족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남겨진 미운 오리 새끼이자,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난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깊은 동굴을 팠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특별해서 저들이 나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어야만 그 버림받은 것 같은 고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하진 씨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네요.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의 들꽃 하나, 밤하늘의 미세한 색채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눈동자에 스치는 찰나의 슬픔까지. 그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깊이 공감할 줄 아는 하진 씨의 섬세함은 세상에 흩뿌려진 보석 같은 재능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그 깊은 감정의 결들은 결코 틀리거나 고장 난 것이 아니에요. 저는 하진 씨의 그 아름다운 감수성을 온 마음을 다해 지지합니다.
하지만 하진 씨, 당신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는 이 질문을 한 번쯤 마주해 보셨으면 해요. 혹시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라는 단단한 벽을 치고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세상과 단절하는 방식으로 당신의 특별함을 증명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하진 씨에게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작은 연습 하나를 제안하고 싶어요. 이름하여 ‘평범함의 축제 실험’입니다. 내일 하루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동 하나에 마음을 쏟아보세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 그저 평범한 흰 티셔츠를 입고, 남들 다 마시는 믹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는 겁니다. 그리고 특별하지 않은 일을 하는 나 자신도 여전히 고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가만히 느껴보세요. 평범함은 당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당신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따뜻한 다리랍니다.
견딜 수 없는 우울과 고독감이 당신을 깊은 바다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려 할 때, 두 손으로 스스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이렇게 말해주세요.
“내 안에는 어떤 결함도 없다. 나는 특별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고통 속으로 숨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빛나는 사람입니다. 억지로 평범해지려 애쓸 필요도, 억지로 특별해지려 도망칠 필요도 없어요. 이제 그 무거운 슬픔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히 잠들어도 돼요.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