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낭만형과(4번) 안전지향형(6번)의 늦은 밤 학원비 전쟁…

지훈(4번)과 수진(6번)이 마주 앉은 거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다. 지훈의 손에는 소수 정예로 지도한다는 유명 영재 미술 학원의 브로슈어가 들려 있고, 수진의 앞에는 이번 달 지출 내역이 빼곡하게 적힌 낡은 가계부와 닳고 닳은 계산기가 놓여 있다. 지훈은 아이가 스케치북에 그려낸 그 놀라운 색감을 남들 다 다니는 뻔한 주입식 학원들로 억누르고 싶지 않다며 애타는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래가지 못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수진이 굳게 닫힌 입술을 열고 내년에 오를 전세금 인상분과 당장 다음 주에 빠져나갈 주택 담보 대출 이자를 조목조목 읊었기 때문이다. 지훈은 수진이 매번 차가운 돈 이야기로 자신의 순수한 이상을 짓밟는다고 느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수진은 이토록 현실 감각이 없는 남편 때문에 홀로 위태로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서글픔에 왈칵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훈의 마음: 왜 당신은 항상 숨 막히는 현실 이야기로 아이의 가능성마저 가두려 하는 걸까?
나는 우리 아이가 정해진 정답만 외우는 획일적인 어른으로 자라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아이가 붓을 쥐고 도화지에 자신의 세상을 펼쳐낼 때 보여주는 그 반짝이는 눈빛은 정말 특별하고 경이롭단 말이야. 당신은 그 학원비가 턱없이 비싸다고, 당장 내신 대비 수학이나 영어 학원부터 보내야 한다고 다그치지만 내 눈에는 당신이 아이의 아름다운 날개를 무참히 꺾어버리는 것처럼 보여. 내가 무슨 큰 빚을 내서 사치를 부리자는 게 아니잖아. 그저 우리 아이만이 가진 고유한 빛깔을 세상의 잣대로부터 지켜주자는 건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낼 때마다, 당신은 마치 내가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철부지라도 된 것처럼 계산기만 두드리지. 당신의 그 차가운 숫자들이 내 가슴에 꽂힐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소중한 가치들이 전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너무 외롭고 비참해. 왜 우리는 당장의 팍팍한 현실을 넘어 아이의 더 넓고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없는 걸까.
수진의 마음: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은 나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워…
나라고 우리 아이가 그리는 그림이 예쁘고 특별한 걸 모르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 영재 학원에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덜컥 써버리면, 당장 다음 달 식비와 대출 이자는 무슨 수로 감당할 건데? 당신은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낭만적인 것들, 예술적인 가능성만 쫓지만, 이 가정을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통장 잔고를 챙겨야만 하잖아. 당신이 현실성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할 때마다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아. 만약 당신 고집대로 덜컥 일을 벌였다가 우리 가정 경제가 휘청거리면 누가 책임질 건데? 내가 늦은 밤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가계부를 붙들고 십 원 한 푼에 벌벌 떠는 게, 나 혼자 호의호식하자고 이러는 줄 알아? 우리가 애써 쌓아온 이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봐 뼛속까지 두려워서 그래. 당신은 내 이런 절박하고 애타는 마음을 그저 숨 막히는 통제로만 여기니까, 거친 폭풍우 속에 나 혼자 버려진 것처럼 서러워
맘풀고 처방전: 지훈과 수진의 관계를 응원하며…
먼저 지훈 씨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에서는 개성낭만형 특유의 아름다운 이상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네요~. 감수성이 깊은 평범함은 싫어하는 성향을 가진 지훈 씨에게 아이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남다르게 키워주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었을 겁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그 순수한 마음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 앉은 수진 씨의 떨리는 어깨도 찬찬히 안아주어야 합니다. 수진 씨는 안전지향형으로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이 그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든든한 사람이네요~. 충성심이 강한 불안을 자주 느끼는 성향인 수진 씨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어떤 위험이나 궁핍함에도 빠지지 않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치는 것입니다. 수진 씨가 차가운 가계부를 들이민 것은 지훈 씨의 꿈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상을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그녀만의 간절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자꾸만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번역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훈 씨, 아내에게 무언가 새로운 계획을 제안할 때는 낭만적인 청사진을 펼치기 전에 먼저 구체적인 예산 마련 계획을 함께 이야기해 보세요. 당신의 제안 안에 가족의 안전이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걸 짚어주면 수진 씨의 마음은 눈 녹듯 편안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수진 씨, 남편의 제안에 현실의 잣대를 대며 선을 긋기 전에 아이를 향한 남편의 그 따뜻하고 특별한 관찰력을 먼저 칭찬해 주세요. 현실적인 돈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남편의 마음을 먼저 알아준다면, 지훈 씨 역시 아내의 꼼꼼한 현실 감각에 기꺼이 기대며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수진 씨가 다져놓은 튼튼한 대지 위에 지훈 씨가 그려낸 아름다운 날개가 더해진다면, 두 분의 가정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면서도 빛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