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제발 문 좀 열어봐. 혼자 아파하지 말고 나한테 기대면 안 돼?”

“동정하지 마. 나 안 죽으니까 당장 나가라고.”
태준(8번)은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지르며 아내가 들고 온 따뜻한 물수건을 거칠게 밀쳐냈다. 물수건이 바닥에 나뒹굴고 물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지만 태준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불쌍해 보여? 다 끝난 것 같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쓸데없이 얼쩡거리지 말고 나가.”
모진 말에 결국 아내가 흐느끼며 방을 나갔다. 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방문을 쾅 닫고 덜컥 빗장을 걸어 잠갔다. 사업 부도와 함께 찾아온 위암 판정. 병원에서 그 선고를 들었을 때부터 그는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입술을 짓이기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아내의 따뜻한 손길에 안겨 기대어 울고 싶은 마음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약해진 모습을 남에게 들키는 것은 그에게 죽기보다 수치스럽고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나를 짓밟을 텐데.
차가운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나는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아파서 미칠 것 같은데 목구멍 밖으로는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내가 문 밖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나를 걱정하는 저 눈빛,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저 온기. 그것이 나는 너무나도 두렵다. 저 따뜻함에 한 번 기대고 나면 내 안에 팽팽하게 당겨진 끈이 툭 하고 끊어져,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약해빠진 인간이 될 것만 같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웅크리고 있으니 열 살 때의 그 축축하고 매캐한 지하실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벨트를 풀어 헤치고 다가오던 밤이었다.
“사내새끼가 어디서 질질 짜. 네가 약해빠졌으니까 무시당하는 거야. 한 번만 더 울면 그땐 진짜 죽을 줄 알아.”
아버지가 내리치는 매질에 등허리가 터져 피가 흘러내려도 나는 악착같이 눈물을 참았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면 아버지는 더 잔인하게 나를 짓밟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나는 맹세했다. 세상에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아프고 약해지면 세상은 나를 먹잇감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절대 울지 않는다. 절대 약해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남에게 기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지금,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태준씨를 응원합니다!
태준 씨, 당신은 당당한 사람이네요. 어린 시절 그 지옥 같은 폭력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맨몸으로 견뎌왔나요. 울면 더 가혹하게 짓밟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스스로 감정을 얼려버리고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철갑옷을 입어야만 했습니다. 그 거칠고 모진 말들 뒤에, 상처 입고 피 흘리며 덜덜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의 으르렁거림이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태준 씨,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그 일, 즉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눈물을 흘리며 무너져 내렸을 때 정말로 당신의 아내가 당신을 비웃고 짓밟을까요. 어릴 적의 그 폭력적인 지하실에서는 약해지면 죽는 것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문 밖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당신을 해치려는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안아주려는 사람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단 한 번의 용기를 내보는 무장 해제 실험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위로나 긴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굳게 닫힌 방문을 열고 나가 아내의 손을 한 번 잡아보는 겁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만 해보세요. “나 너무 아파.” 그 한 마디를 뱉어내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말고 흘려보세요. 당신이 무기를 내려놓고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품이 당신을 감싸 안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홀로 통증과 두려움에 떨며 잠들지 못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이제 애써 강한 척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하고 곁에 기대도 돼. 내가 무너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아.
그동안 당신의 전부를 걸고 억척같이 살아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홀로 어둠 속에서 상처를 핥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언제나 잔인하지만은 않으니까요. 이제 그만 무거운 갑옷을 벗고 따뜻한 온기 속에서 잠들어도 돼요.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