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추구형과(1번) 평화중재형(9번)의 숨 막히는 화요일 저녁..

화요일 저녁 8시, 퇴근 후 부엌으로 향하던 수연(1번)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한 달 전부터 덜컹거리던 싱크대 문짝이 기어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버린 것이다. 거실을 돌아보니 남편 민재(9번)는 퇴근복을 허물처럼 벗어둔 채 소파에 누워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저 문짝, 지난달부터 고쳐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날 선 목소리를 내는 수연에게 민재는 느릿느릿 몸을 뒤척이며 대답한다. 주말에 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내가 이따가 할게, 이따가. 당장 나사를 조여 원래의 완벽한 상태로 돌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수연과, 당장의 평화로운 휴식을 위해 눈앞의 불편함을 그럭저럭 감수하는 민재. 두 사람 사이의 온도가 거실 한가운데서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수연의 마음: ‘이따가’라는 말이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건데?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야. 저 이따가라는 말이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 건지 이젠 묻고 싶지도 않아. 싱크대 문짝 하나 나사로 조이는 게 뭐 대단한 노동이라고 한 달을 미루지? 나는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집안 꼴이 엉망이면 도저히 마음 편히 쉬지를 못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다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고. 그런데 남편은 어쩜 저렇게 천하태평일 수가 있지? 내가 잔소리꾼 마녀가 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잖아. 남편이 미루고 방치한 일들은 결국 다 내 몫의 짐으로 돌아오니까. 이 가정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고 매일 나 혼자만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외롭고 답답해 미치겠어.
민재의 마음: 퇴근하고 딱 삼십 분만 조용히 쉬면 안 되는 걸까?
아, 퇴근하고 와서 딱 삼십 분만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데 또 시작이네. 싱크대 문짝 하나 떨어진 게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아니잖아. 그냥 조심해서 열면 되고, 정 불편하면 이번 주말에 내가 알아서 고칠 텐데 아내는 왜 매사 저렇게 사람을 들볶는지 모르겠어. 밖에서 하루 종일 시달렸으면 집에서는 좀 둥글둥글하게 마음 편히 지내면 안 되나?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으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그냥 이 무거운 상황을 피하고만 싶어. 내가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진짜 이따가 기운 좀 차리면 하려고 했는데, 저렇게 정색하고 화를 내면 있던 의욕도 싹 사라져 버려. 그냥 이 숨 막히는 분위기가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 뿐이야.
맘풀고 처방전: 수연과 민재의 관계를 응원하며..
평범한 평일 저녁, 부서진 싱크대 문짝 하나를 두고 벌어진 이 서늘한 침묵은 두 사람이 가진 마음의 속도가 너무 달라서 생겨난 안타까운 풍경이랍니다.
먼저 수연 씨의 마음속에는 완벽추구형 특유의 짙은 책임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은 올곧은 사람이네요~ 라고 꼭 안아드리고 싶어요. 수연 씨에게는 올곧음,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타협하기는 싫은 성향이 뚜렷해서 삐걱거리는 일상을 방치하는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거랍니다.
반면 민재 씨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유연한 평화중재형의 결을 가진 분입니다. 당신은 편안한 사람이네요~ 라는 다정한 인사가 참 잘 어울리지요. 민재 씨는 편안함, 그리고 조화로운 갈등은 피하고픈 성향을 지녔기에, 문제를 억지로 들추기보다는 흐린 눈으로 덮어두며 어떻게든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 애쓰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두 분의 일상이 부드럽게 흘러가려면 서로의 리듬을 조금씩 조율해야 합니다. 수연 씨, 남편의 느릿한 행동을 무책임하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당장 완벽하게 해결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만 받아들여 보세요. 남편을 다그치기보다 가만히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민재 씨, 수연 씨에게 막연히 이따가 하겠다는 말은 불안감을 키우는 폭탄과도 같습니다. 토요일 오전 열 시에 고칠게 처럼 구체적인 시간을 약속하고 반드시 지켜보세요. 아내의 올곧음과 남편의 편안함이 다정하게 손을 잡을 때, 덜컹거리던 두 사람의 마음 문짝도 어느새 튼튼하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