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거 이미 완벽한데?
“수진아, 보고서 진작 올렸어. 걱정 마.”
팀장의 말에도 수진(1번)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료들은 하나둘 퇴근했지만, 그녀는 이미 완성된 기획안을 여섯 번째 고쳐 쓰고 있었다.
“언니, 그거 이미 완벽한데?” 후배 지민이 가방을 메고 물었다.
“아니야. 3페이지 표현이 애매해. 혹시 팀장님이 오해하실 수도 있어.”
“팀장님 아까 완벽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수진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지민은 작게 한숨을 쉬며 사무실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온 수진은 침대에 누웠지만 눈이 말똥말똥했다. 오늘 회의에서 했던 말들이 되감기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할 걸. 과장님 표정이 미묘했어. 내 말이 건방지게 들렸나? 자료에 오타는 없었나?’
휴대폰을 꺼내 보냈던 메일을 다시 확인했다. 새벽 2시, 결국 잠들지 못한 그녀는 일어나 노트북을 열었다.
“그냥… 한 번만 더 확인하자.”
다음 날 아침, 수진은 여느 때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누구도 그녀가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수진 씨 보고서 정말 깔끔하더라. 역시 우리 팀 에이스야.” 팀장의 칭찬에 수진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미 다음 걱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더 잘해야 해.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야.’
혹시 실수는 없었나?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온몸이 피곤한데 머리만 멀쩡하다.
‘왜 나만 이럴까.’
오늘도 괜찮았다. 아니, 괜찮았어야 한다. 팀장님도 칭찬했고, 동료들도 만족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떠올랐다.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아빠의 얼굴이 굳어지던 그 표정.
“92점? 틀린 문제가 뭐야.”
“계산 실수했어…”
“실수? 실수는 핑계야. 집중을 안 했다는 거지.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점수가 증명하는 거야.”
그날 밤, 나는 틀린 문제를 백 번씩 다시 풀었다. 손이 저려도 멈추지 않았다. ‘다음엔 실수하면 안 돼.’
중학교 때는 더 심했다. 준비물을 깜빡했다고 담임 선생님 앞에서 혼났을 때, 엄마는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피해서 어떡해. 선생님이 전화까지 하시네. 넌 왜 그렇게 덤벙대니?”
“미안해…”
“미안하다고 다야? 다음부턴 전날 밤에 세 번씩 확인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걸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된 건. 실수하면 안 된다는 공포가 몸에 새겨진 건.
지금도 그렇다.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 같은 두려움. 완벽하지 않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은 공포.
그래서 매일 밤, 나는 오늘을 재판한다. 혹시 실수는 없었나, 누군가 실망시키진 않았나.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수진씨를 응원합니다!
수진 씨, 당신은 정말 올곧은 사람이네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완수하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요. 완벽추구형인 당신은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기둥 같은 존재예요.
하지만 잠깐, 질문 하나 할게요.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실수’를 했을 때, 정말로 모든 게 무너졌나요? 92점을 받았을 때, 준비물을 깜빡했을 때, 당신이라는 사람의 가치가 정말 사라졌나요?
아니었죠. 단지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을 뿐이에요.
지금 당신은 과거의 목소리로 현재를 살고 있어요. “실수하면 안 돼, 완벽해야 해,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어”라는 오래된 주문을 매일 되뇌고 있죠. 하지만 그 주문은 당신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편안한 잠, 따뜻한 관계, 숨 쉴 수 있는 여유—을 밀어내고 있어요.
오늘부터 딱 하나만 시도해볼까요?
“80%면 충분해” 실험
다음 보고서는 의도적으로 80%만 완성하고 제출해보세요. 여섯 번 고치지 말고, 두 번만 검토하세요. 무너질 것 같아도, 일단 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밤에 자책이 시작되면, 노트에 이렇게 써보세요.
“오늘 나는 ○○을(를) 완수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일 실수해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처음엔 거짓말처럼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매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안의 아빠 목소리보다 당신 자신의 목소리가 더 커질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를 살아도, 당신은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에요.
이제 그만 잠들어도 돼요. 오늘 하루, 정말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