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성취형(3번)과 목표성취형(3번)의 부부동반 모임을 앞둔 서늘한 저녁 식탁.

이번 주말은 지원(3번)이 몇 달 전부터 공을 들인 남편 회사 임원진과의 부부동반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이다. 지원은 남편의 승진을 돕기 위해 자신의 인맥과 센스를 총동원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 세탁소에서 방금 찾아온 남편의 고급스러운 수트와 자신의 실크 원피스를 거실에 걸어두며, 지원은 모임에서 나눌 대화 주제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탁 앞에 앉은 민수(3번)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최근 민수는 자신이 주도했던 큰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회사 내 입지가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퇴근하면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만 있던 민수는, 수트를 바라보는 지원을 향해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번 주말 모임 안 가. 아니, 못 가. 취소해. 지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 자리를 어떻게 만들었는데. 당신 요즘 회사에서 분위기 안 좋은 거 알아. 그러니까 더 당당하게 나가서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굴어야지. 여기서 주저앉으면 끝이야. 하지만 민수는 지원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나 지금 그 사람들 앞에서 실없이 웃고 떠들 자신 없어. 내 꼴이 어떤지 뻔히 아는데, 나가서 들러리나 서라고? 당황한 지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당신 대체 왜 그래? 옛날의 그 자신감 넘치던 사람은 어디 가고 왜 이렇게 패배자처럼 구는 건데? 그 단어에 민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완벽했던 거실에는 서늘한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지원의 마음: 당신의 무기력이 내 성취마저 끌어내리는 것 같아 불안해
도대체 왜 저렇게 나약하게 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살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지. 프로젝트 하나 엎어졌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럴수록 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 플랜을 짜고,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옆에서 도와주고 판을 다 깔아주는데, 왜 저렇게 방안에 틀어박혀서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무기력한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화가 나고 두려워. 우리는 항상 남들이 부러워하는 워너비 부부였어. 둘 다 커리어 탄탄하고, 여유롭고, 멋지게 사는 사람들. 나는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밖에서나 안에서나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남편이 저렇게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 마치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우리 가족의 성공적인 이미지마저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남들이 우리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건 죽기보다 싫어. 남편이 빨리 예전처럼 반짝이고 유능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자꾸 숨으려고만 하니까 너무 답답해.
민수의 마음: 잘나가는 당신 옆에서 나는 자격 미달인 것 같아 숨이 막혀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도 끔찍해. 회사에서 내 자리가 위태로워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 존재 가치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어. 나는 유능해야 하고, 인정받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의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패자 같아.
그런데 집에 오면 아내가 나를 더 숨 막히게 해. 아내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계획이 꽉 차 있고, 언제나 그렇듯 빛이 나지. 나를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는 알아. 저 완벽한 아내의 옆자리에 서기에는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걸. 실패한 내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는 건 발가벗겨진 채로 거리에 나앉는 것만큼 두려워. 아무 문제 없는 척 웃으라고? 나는 지금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게 돼. 아내가 내게 쏟아내는 저 응원과 채찍질이, 사실은 나를 향한 실망감이라는 걸 알아. 당신은 왜 그것밖에 안 되냐고 비난하는 것 같아서,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
맘풀고 처방전: 지원과 민수의 관계를 응원하며..
두 분은 모두 에니어그램 3번, 목표성취형의 성향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은 열정적인 사람이네요 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빛이 나는 분들이지요. 목표성취형은 목표를 향한 집요한, 실패는 용납 못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성취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멋진 분들입니다.
하지만 같은 성향이라도, 현재 마음의 에너지가 어느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지금 지원님은 건강한 에너지로 문제를 돌파하려 하고 있지만, 민수님은 깊은 스트레스 속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입니다.
지원님, 남편이 방으로 숨어버린 것은 당신이 싫어서도, 삶을 포기해서도 아닙니다. 3번 유형에게 실패란 곧 죽음과도 같은 고통입니다. 실패는 용납 못 하는 성향이기에,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가장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 보여주고 싶지 않아 동굴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스텝을 위한 해결책이나 완벽한 부부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남편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초라해진 순간에도, 당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무조건적인 수용의 눈빛입니다. 오늘만큼은 성공과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내려놓고, 그저 고생했다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보시면 어떨까요.
민수님, 지금 느끼는 그 깊은 좌절감과 수치심을 온전히 안아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내는 당신의 타이틀이나 명함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와 삶을 나누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그 약한 모습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 나 지금 너무 힘들고 두렵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민수님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부부라는 관계는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는 쇼윈도가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꿰매어주며 함께 걸어가는 진짜 현실이니까요.
서로의 빛나는 성공을 축하해주던 두 분이, 이제는 서로의 아픔까지 품어주는 더 깊고 단단한 사랑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